CEO의 반말은 사소한 말버릇이 아니다
법이 경고하고, 예수가 보여주며, 폴 파머가 증명한 리더의 언어
조직 안에서 CEO의 말은 단순한 개인적 표현이 아니다. 그 말은 권한이며, 기준이며, 법적 책임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CEO가 구성원에게 반말을 사용하고,
“야”, “너”, “이거 해”, “그것도 못 해?”와 같은 하대적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는 친근함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 위험이며, 리더십의 실패다.
상호 존중하는 태도와 언어는 리더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1. 법은 이미 ‘말투’를 책임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여기서 핵심은 분명하다.
특히 CEO는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구조적 우위를 가진 존재다.
같은 말이라도 CEO의 입에서 나오면 법은 그것을 ‘개인적 말버릇’이 아니라 권한을 동반한 언어 행사로 본다.
2.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더 이상 면책 사유가 아니다
법원과 노동 행정은 일관되게 판단한다.
“동등한 관계에서는 허용될 수 있는 언행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사용할 경우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조직 문화, 창업자의 성향, 과거의 관행은 이제 더 이상 방패가 되지 못한다.
법은 의도보다 영향, 화자의 감정보다 청자의 고통을 본다.
3. 성경은 ‘군림하는 말투’를 리더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가치 위에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이 문제는 단순한 법적 리스크를 넘어 신앙의 진정성과 직결된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셨지만 제자들에게 반말이나 모욕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질문하셨고, 설명하셨고, 기다리셨다.
하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사람을 주관하되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리라.” (마 20:26)
4. 반말은 친밀함이 아니라 ‘선택권의 박탈’이다
CEO의 반말은 종종 이렇게 포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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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 같은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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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밀함은 거절할 수 있는 자유 위에 세워진다.
직원이:
본인의 헌신과 함께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국종 의사
5. 존중으로 현장을 이끈 의료 리더 — 이국종 교수
이국종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로, 중증외상체계 구축을 이끈 대표적인 의료 리더다.
그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아래 사람을 향한 하대의 언어로 리더십을 증명하지 않았다.
책임은 자신에게 두었고, 지시는 분명했으며, 언어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의 현장은 고성과 무시가 아니라 신뢰로 움직였다.
폴 파머는 인격만큼 상냥한 언어로 주변 동료들과 환자들을 대했다. 언어가 그의 삶을 먼저 보여주었다.
6. 세계가 존경한 의사의 언어 — 폴 파머(Paul Farmer)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국제 의료 NGO Partners In Health 설립자인 **폴 파머(Paul Farmer)**는
전 세계가 존경한 의사이자 리더다.
그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일하며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존중 없는 언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이미 사명을 배반한 것이다.”
폴 파머는
그의 영향력은 명령에서 나오지 않았다. 도덕적 신뢰에서 나왔다.
7. CEO에게 요구되는 즉각적인 변화
이제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법과 말씀, 그리고 실제 리더들의 삶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CEO라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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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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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라는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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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 하대와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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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즉흥 발언
그리고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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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또는 직함으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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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존댓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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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중심의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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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자리에서의 지도
CEO의 말 한마디는 조직을 살릴 수도, 법정으로 보낼 수도 있다.
법은 이미 경고하고 있고, 예수는 기준을 보여주었으며, 폴 파머는 그 기준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권위는 반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권위는 절제된 언어와 존중의 태도에서 나온다.
진정한 리더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자리에 있을수록 가장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이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야고보서 1:19)